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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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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Arrival) 후기, 해석

드니 빌뇌브의 인문학적 SF





<그을린 사랑>,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의 영화를 연출했던 드니 빌뇌브 감독이 <컨택트>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는 SF 장르이며, 예전 작품에서 보여줬듯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요소를 첨가하여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컨택트>는 테드 창의 장편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며, 기존 SF 영화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보통의 SF 영화가 시각적 효과를 통해 과학적, 공학적 내용을 엮어냈다면, <컨택트>는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철학적 내용을 엮어냈다. 출연 배우로 에이미 아담스 (루이스 뱅크스), 제레미 레너 (이안 도넬리), 포레스트 휘태커 (웨버 대령) 등이 등장하며, 명품 배우들답게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컨택트가 아닌, 어라이벌

<컨택트>를 여러 가지 키워드로 해석해보겠다.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이며, '어라이벌'이라고 발음하고 '도착'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수입사 측에서 영화 제목을 임의로 바꿔버렸다. 아마도 <어라이벌>이라는 제목이 접근성이 별로라서 임의로 바꾼 것 같은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계인과의 소통' 주제를 다룬 <콘택트, 1997>를 겨냥하여 비슷하게 바꾼 것 같은데, 애초에 비슷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 분위기부터 연출 방식까지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다. 

최근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바꾸는 외화들이 많다. 곧 개봉할 나이트 샤말란 감독,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Split, 2016>도 <스플릿>이 아닌, <23 아이덴티티>로 바꿔버렸다. 제목부터 내용 스포일러인 셈이다. 바꾼 이유는 단순히 최국희 감독, 유지태 주연의 <스플릿, 2016>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제목 변경은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난다. 물론, 제목 변경의 좋은 사례도 있다. <프로즌>을 <겨울왕국(Frozen)>으로 바꾼 사례가 그 예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이들을 주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제목으로 바꾸는 것이 흥행 면에서나 접근 면에서나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케이스가 아니라면 제목은 제발 그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영화 제목'은 감독의 모든 생각이 집약된 함축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어라이벌 [Arrival]

영화는 어느 날 12개의 쉘이 지구에 '도착(어라이벌)'하며 시작한다. 어디서 왔고 왜 왔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What is your purpose on Earth?" 라는 질문이었다. 즉, "지구에 무슨 목적으로 왔는가?" 이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알 수 없는 음성만 들려 해석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언어학의 권위자 '루이스 뱅크스 박사'를 부른 것이었다.





언어학적 접근

영화 <컨택트>의 주인공은 무려 '언어학자'다. 보통 SF 영화의 주인공 직업은 거의 과학자, 엔지니어이거나 군인이다. 그래서 과학적·공학적 분석을 통한 이야기 전개가 주를 이루거나, 군인답게 무력적·폭력적으로 때려 부수는 전개가 주를 이룬다. <컨택트>에서도 군인, 과학자가 모두 나온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은 언어학자 '루이스'이며, 영화의 핵심 소재 또한 '언어학'이다. 군인으로 등장하는 '웨버 대령'은 그저 중개자 역할일 뿐이고, 물리학자로 등장하는 '이안 도넬리 박사'는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일을 하지만 루이스에 비해 훨씬 비중이 작다.





"What is your purpose on Earth?"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단순한 질문이지만, 언어를 모른다면 단순하지가 않다. 한국인이 영어를 모른다면 위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 없듯이,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이미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 지구의 언어와 달리, 생전 처음 문자 체계에 번역기나 사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 문장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물음표 '?'가 '질문'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상대에게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평문과, 상대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문은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your(you)가 특정 명사(단수)의 의미인지 집합 명사(복수)의 의미인지 이해시켜야 한다. 개개인(당신)의 목적과 모두(당신들)의 목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휘를 이해시켜야 한다. '목적(purpose)'이 무슨 뜻인지 모르면 문장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목적'이라는 단어를 이해했더라도, 그들의 행동이 지적 생명체로서 의도적인 행동한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지구에 온 이유가 본능에 의해서 온 것이라면 '목적'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질문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루이스가 언어학 지식으로 하는 일은 외계인과의 '소통'이다. 미 정부는 군인과 정보기관을 파견하여 외계인과 소통하려 하지만, 이것은 양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 통보였다. 게다가 이러한 일방적 통보는 상대가 이해하지도 못할 통보였으니, 서로 간의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루이스는 언어학자답게 외계인들에게 우선 기초 영어를 가르치고, 그 후에 서로의 언어를 공유하는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애봇(Abbott)'과 '코스텔로(Costello)'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헵타포드(Heptapods)'라는 종족명을 붙여준다. '애봇'과 '코스텔로'라는 이름은 1940~1950년대에 활동했던 미국 코미디언 듀오의 이름이다. 외계인도 듀오로 나왔기 때문에 이안 박사가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헵타포드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만든 단어이며, '헵타(Hepta)는 '7(Seven)'을 뜻하고, 포드(Pod)는 '발(Foot)'을 뜻한다.





로고그램 [Logogram]

헵타포드는 음성과 상관관계가 없는 문자 체계로 의사소통을 했다. 이를 Semasiographic이라고 하며, 비슷한 예로 컴퓨터 아이콘, 음악 기호, 수학 기호 등이 있다. 루이스는 이를 간파하여, 시각적인 대화, 즉 문자를 통해 대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인간(HUMAN)', '루이스(LOUISE)', '이안은 걷는다(IAN WALKS)' 등의 기초 영어를 통해 영어의 구조와 어휘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해당 영어 단어나 문장에 상응하는 헵타포드의 문자가 뭔지 알아냈다. 이를 통해 알아낸 것은 외계인들의 문자가 '표어문자'라는 사실이었다. 표어문자(로고그램)란 한 문자가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를 나타내는 문자를 말한다. 한자(漢字)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외계인들의 문자는 지구의 표어문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표어문자였다. 하나의 문자에 수십 개의 단어나 문장이 포함될 수 있는 문자인 것이다.





비선형 철자법 [Nonlinear Orthography]

헵타포드의 문자 체계는 비선형 철자법이다. 비선형이라 함은 말 그대로 선형이 아님을 뜻한다. 헵타포드의 문자는 원형이며, 원형 모양답게 처음과 마지막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언어 구조에 말의 시작과 끝을 표현하는 일련의 흐름이 없다. 인간의 언어는 시간적 흐름이나 언어 구조적 순서에 따라 단어를 배열하고, 이를 통해 문장을 만들어 순서대로 발음한다. 이와 달리, 헵타포드의 문자는 흐름이나 순서가 없다. 전방향이나 역방향도 없다. 모든 의미가 한꺼번에 동시에 존재하는 문자 체계인 것이다.





사피어-워프의 가설 [Sapir-Whorf Hypothesis]

사피어 워프의 가설이란 말하는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결정된다는 가설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은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 가설이다. 이 말은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문자 체계가 헵타포드의 삶과 사고를 지배한다는 것이고, 헵타포드의 삶도 비선형적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실제로 헵타포드의 시간도 비선형적이었다. 그들에게는 과거나 미래가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의 공간에 모든 시간이 담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5차원 공간을 떠올리면 편하다. <컨택트>의 결말에서 셸이 사라지는 모습이 헵타포드가 비선형적 시간을 가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헵타포드들이 다른 시간대로 가는 셈이다.





12

쉘은 미국 몬태나, 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상하이, 파키스탄 펀자브, 영국 데번 등 총 12곳의 장소에 도착한다. 왜 쉘이 하필이면 12개였을까?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답을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에 추측만 가능하다. 아마도 12는 시공간 개념에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2는 시간 개념에서 정말 많이 쓰인다. 하루는 24(12*2)시간이며, 오전과 오후는 각각 12시간으로 나뉜다. 시계도 1부터 12까지 표시된 12시제이며, 1년은 12달이다. 또 동양적 개념인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도 '십이지'와 '십이시'이다. 또 12는 공간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쉘이 분포된 사진을 보면 어느 한 곳에 몰려있는 것이 아닌, 여러 문화권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또 황도대는 12자리의 별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구를 3차원 공간에 가장 빼곡히 쌓는 방법은 12개의 구와 서로 접하게 쌓는 것이다. 





회문 [Palindrome; 回文]

한나는 루이스의 딸이다. 한나의 이름은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HANNAH이다. 이러한 단어를 회문이라고 한다. 이는 비선형적 철자법을 가진 헵타포드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안을 연기한 배우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도 RENNER가 회문이다. <컨택트>는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이 같다. 즉, 수미상관 구조이다. <컨택트>는 수미상관법을 통해 처음과 끝이 연관됨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비선형적 구조인 영화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로 영화 오프닝과 결말에 쓰인 OST는 같은 음악이며, 제목은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이다. 이 음악은 <셔터 아일랜드, 2010>에서도 쓰인 바 있다.

▲ [컨택트 오프닝/엔딩 OST]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루이스의 능력

루이스는 헵타포드들에게 선물(도구, 무기)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예지 능력'이었다. 사실 예지 능력이라는 표현은 지극히 인간의 기준으로 본 것이며,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시간을 체험하는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루이스가 이 능력을 처음 얻게 된 것은 헵타포드와의 두 번째 만남 이후였다. 이 두 번째 만남에서 루이스는 자신의 이름이 'LOUISE'임을 알려주려고 방호복을 벗는다. 그래서 루이스는 쉘 내부의 어떤 작용으로 인해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루이스만 이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볼 때 이는 결코 아니다.

루이스는 카나리아 새가 쉘 내부에서도 건강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카나리아를 신뢰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루이스는 자신도 헵타포드들을 신뢰한다고 보여주기 위해, 또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방호복을 벗는다. 헵타포드들은 이러한 루이스의 행동에 감명받았고, 그래서 루이스에게 능력을 준 것이었다. 즉, 루이스는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이러한 루이스의 행동은, 그녀가 언어학자였기에, 그리고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결국 이는 운명이었다고 볼수도 있다.

그래서 루이스는 자신의 미래이자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비선형적 시간으로 보자면 이는 동시에 일어난 일이니,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던 셈이다. 자신이 이안과 결혼하여 한나를 낳고, 이안은 루이스의 능력을 알게 된 이후 떠나고, 그 후에 한나가 불치병에 걸려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루이스는 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결과를 알더라도 그 결말로 가는 과정, 즉 '매 순간'을 사랑하고 추억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소통

언어를 서로 안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팀플레이 게임이 있다. 언어가 통하기 때문에 소통이 더 잘 돼서 팀을 승리로 끄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언어가 통해서 서로 욕하고 헐뜯어 팀을 패배로 이끄는 경우도 많다. <컨택트>도 그렇다. 12개의 쉘에서 각각 정보를 수집하고 서로 간에 소통하여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야 했지만, 결국 이들은 소통을 포기하고 이기적인 자세를 취하고 만다. 게다가 몬태나 주의 쉘에서는 일부 미군이 쉘에 잠입하여 폭파시키려고 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군대를 통해 쉘을 공격하려고 한다. 언어를 서로 알기 때문에 적극 소통해야 할 이들끼리는 분열되고, 오히려 헵타포드와 소통이 안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해치려 한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하지만 이안과 루이스 덕분에 이 위기를 모면한다. 이안은 폭발 직전에 헵타포드가 준 방대한 데이터를 얻었고, 이를 분석해보니 그 데이터는 전체 공간의 1/12 (순환소수 0.0833) 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루이스는 이안의 연구 덕분에 12개의 국가가 서로 협력하고 소통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일촉즉발 상태의 섕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을 막는다. 이 과정에서 루이스의 능력이 힘을 발휘한다.





<컨택트>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 능력으로 새로운 SF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요한 요한슨 음악 감독의 훌륭한 음악도 크게 한몫한다. 덕분에 신비롭고, 미스터리하고,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훌륭하게 자아냈다. 이 둘의 인연은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부터 함께했었다. 거기다가 앞으로 개봉할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함께할 예정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1982>의 후속작이며, 당초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드니 빌뇌브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SF 영화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블레이드 러너>를 어떻게 이어받아 연출할지 굉장히 기대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2017년 10월 경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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