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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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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후기

클로버필드의 스핀오프, 그리고 쌍제이의 떡밥





<클로버필드, 2008>가 개봉한 이후 8년 만에 후속작이 등장했다. 정말 뜬금없이 나타났다. J.J. 에이브럼스가 비밀 프로젝트로 꽁꽁 숨겨서 제작한 탓이었다. 정확히는 <클로버필드2>가 아닌, 스핀오프 영화다. 즉, 클로버필드 1편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새로운 캐릭터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는 번외이다. 때문에 클로버필드 1편을 안 봐도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는 것에 큰 지장이 없다. 다만 보고 보는 것과 안 보고 보는 것에 차이는 분명히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다. 또 이번 영화는 클로버필드 1편과 다른 느낌의 공포 스릴러다. 클로버필드 1편은 <블레어 윗치>, <알.이.씨> 같은 영화처럼 모큐멘터리[각주:1] 1인칭 영화였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일반 영화의 시점과 같다.





<클로버필드>는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했고, J.J. 에이브럼스가 제작을 맡았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J.J. 에이브럼스가 그대로 제작을 맡았지만, 연출 감독은 뉴페이스로 교체되었다. 댄 트라첸버그(댄 트랙턴버그) 라는 미국 출신의 젊은 감독으로, 이번 <클로버필드 10번지>가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데뷔작이지만 이전에 TV 시리즈나 단편 영화를 연출한 실력이 있어 훌륭하게 연출해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 영화도 J.J. 에이브럼스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진다. 떡밥이 난무하는 쌍제이의 스타일이 말이다.





주인공 미셸 역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맡았다. 이 여배우는 주로 호러 영화에서 활약했던 '호러 퀀'이다. <데스티네이션 3>, <블랙 크리스마스>, <더 씽>, <링컨: 뱀파이어 헌터>, <그라인드 하우스> 등의 작품이 그 예이다. 이외에도 <다이 하드 4.0>, <바비>, <데쓰 프루프>, <스카이 하이> 등의 다른 장르 영화도 출연하기도 했다. 미소가 참 예쁘고 연기도 괜찮은 여배우라고 생각했었는데, 크게 뜰만한 영화가 없어서 참 아쉬웠었다. 이번 클로버필드 10번지를 기점으로 좀 더 떠서 다양한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 외에 하워드 역으로 존 굿맨, 에밋 역으로 존 갤러거 주니어가 맡아 열연했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클로버필드, 2008>과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클로버필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체모를 괴물로부터 도망치는 공포 영화였다. 처음에는 괴물의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어 미지의 공포로 묘사되지만, 나중에 괴물의 모습이 드러나며 압도적이고 거대한 공포로 묘사된다. 한마디로 괴물이 등장하는 호러 영화였다.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납치극 + 폐쇄공간 스릴러로 시작한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미셸'은 남자친구 벤과 싸운 뒤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좁은 방에 족쇄에 묶여 갇혀있었다. 미셸을 가둔 사람은 이상한 중년 남자 '하워드'였다. 처음에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족쇄 열쇠와 식사를 제공하며 알 수 없는 호의를 베푼다. 미셸이 갇힌 공간은 하워드가 에밋을 통해 만든 지하 벙커였고, 하워드의 말에 따르면 밖은 핵 공격(또는 외계 공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공기가 오염되어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려준 걸 감사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셸은 하워드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하워드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에밋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미셸은 하워드에 순종하는 척하며 호시탐탐 탈출할 기회를 엿본다. 그리고 여러 시도 끝에 하워드의 열쇠를 탈취하여 밖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미셸은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는 여자(레슬리)를 발견하고 결국은 하워드의 말을 믿게 된다. 이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였다. 





그 이후 잠시간 정말 '드라마'같은 일상이 진행된다. 요리하고, 보드게임하고, 영화 보고, 패션 잡지를 보는 등 정말 평화롭게 지낸다. 그러다가 공기 정화기가 고장 나며 평화가 깨지게 된다. 미셸이 정화기를 고치러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HELP 글자(안에서 거꾸로 쓰인 글자)와 피 묻은 귀걸이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하워드가 줄곧 얘기했던, 하워드의 딸 '메간'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장르는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전환된다.

이번엔 미셸과 에밋이 같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둘 다 하워드의 말 일부분은 믿고 있었다. 바로 밖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패션 디자인에 소질 있던 미셸이 둠스데이 책을 바탕으로 방독면을 몰래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결국 하워드에게 들켜버리고 에밋이 죽고 만다. 에밋을 죽인 하워드는 둘만 남았다며 갑자기 싸이코 모드가 된다. 더 기다릴 수 없었던 미셸은 방독면과 방호복을 완성하고 바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하워드를 물리치고 탈출했지만, 바깥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미쳐있었다. 외계인이 정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SF 호러 장르로 바뀐다. 미셸은 기지를 발휘하여 외계인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고 생존자가 있는 지역으로 향하며 영화의 막이 내린다.





줄거리가 길었는데, 이 영화는 바로 이 스토리 흐름을 보는 영화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 던져진 여러 단서들과, 그 단서들을 모아서 진실을 향해 가는 미셸을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 잘 보면 단서들이 정말 디테일하게 많이 놓여있다. 그 예를 들어 보겠다.

영화 처음에 미셸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근처에 있는 차를 보는 장면이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차는 하워드의 트럭이고, 그 안에 타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하워드처럼 덩치가 크다. 이때 하워드는 미셸을 점찍어 둔 것으로 보인다. 하워드가 자신의 딸이라며 말했던 '메간'은 사실 메간이 아니었고,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 동네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는 탈출을 시도했었지만 살해당했다. 아마도 하워드는 외계 침공이 있기 전에도 이 벙커에서 어린 여자를 곁에 두며 생활하는 사이코패스였을 것이다.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은 용서를 받아들이겠다면서 곧바로 에밋을 쏴죽이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러고 나선 수염을 깔끔하게 밀고 꽃단장을 한 뒤, 미셸에게 가면서 이제 방해꾼이 없다며 우리 둘만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생체를 녹이는 염산을 보관하는 것도 그의 시체 처리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워드의 이런 모습은 딸에 대한 집착이거나 어린 여자에 대한 페도필리아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에밋과 단어 연상 퀴즈를 할 때 미셸을 보며 아가씨(woman)이라는 단어를 못 떠올리고, 소녀(girl)나 아이(child)라는 단어만 떠올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이외에도 에밋이 묘사한 섬광(클로버필드 1편과 이어지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창문 너머에 멀쩡한 식물(공기 오염이었다면 식물 또한 죽었을 것이다)에밋의 지갑 속에 있던 버스 티켓(에밋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알려준다), 차에 두고 왔다던 술병(이것은 나중에 외계 우주선을 폭발시키는 데 사용된다), 마지막 번개 속에 비치는 거대한 외계 우주선(남부지역을 정말 탈환했을까) 등의 여러 단서가 있다.





그리고 쌍제이답게 해결되지 않은 떡밥도 존재한다. 우선 외계인의 모습이 클로버필드 1편과 완전히 다르다. 1편은 거대한 생체 외계인과, 독을 뿜는 땅거미 같은 것들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메카닉스러운 외계인이 등장한다. 1편에서도 그랬듯이 이 외계 생물에 대한 배경 설명이 전혀 없다. 클로버필드 2편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모두 등장할 것으로 보이고, 등장한다면 배경 설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벙커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던 라디오가, 미셸이 차를 타고 갈 때는 라디오가 나온다. 하워드가 벙커 안에서 둘이서만 살기 위해 라디오가 안 된다고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외계인의 낚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실제 생존자가 말한 라디오 내용일 수도 있지만, 번개에 비치는 거대한 외계 모선을 보면 좀 의구심이 든다. 





어쨌든 이 떡밥들이 클로버필드 2에서는 모두 해결됐으면 좋겠다. 아니, 모두까지가 아니라 <로스트> 처럼만 안 해줬으면 좋겠다. 이번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다양한 장르를 정말 조화롭게 잘 섞은 것 같다. 스릴러, 드라마, SF, 호러, 미스터리, 각 장르의 특징을 잘 살린 것 같다. 일부 관람객은 마지막 외계인의 등장이 너무 뜬금없다며 어이없어하기도 했다는데, 이 영화가 <클로버필드>의 스핀 오프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좀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클로버필드>를 안 보고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봤다면 더 놀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거짓 상상에 속은 줄 알았더니, 그 거짓보다 더 끔찍한 진실이 눈앞에 등장했으니 말이다. 여담으로, 그 끔찍한 진실을 맞이하는 미셸의 자세가 정말 매력적이다. 그야말로 여전사 스타일이다. 내 취향이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가 2편에서 다시 등장했으면 한다. 정말로.





  1. 모큐멘터리 [Mockumentary] :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라고도 하며, 영화·TV 프로그램 장르 중 하나이다. 허구 내용을 실제처럼 보이게 묘사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장르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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