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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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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Okja) 후기

봉준호 감독의 해학적인 모험기!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이 개봉했다. 영화 제목은 <옥자>이며, 정말로 한국의 전통적인 향이 물씬 풍기는 이름이자 제목이다. 그리고 해외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서 개봉 전부터 이슈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칸 영화제 초청, 넷플릭스 배급 등의 문제로 또다른 이슈를 낳기도 했다. 이번 영화는 동물보호, 자본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봉준호 스타일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출연진 또한 화려하다. 틸다 스윈튼 (루시 미란도 역), 제이크 질렌할 (조니 월콕스 역), 폴 다노 (제이 역), 릴리 콜린스 (레드 역), 스티븐 연 (케이 역) 등의 할리우드 배우가 등장하며, 안서현 (미자 역), 윤제문 (박문도 역), 최우식 (김군 역), 변희봉 (희봉 역) 등의 한국 배우도 등장한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넷플릭스[각주:1] 배급

창의적인 감독 봉준호, 그는 <옥자>의 배급부터 이슈를 창조했다. 보통 영화는 먼저 극장에 배급하여 영화를 상영한다. 때문에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을 가야만 감상할 수 있었다. 그 후 영화의 인기가 시들고 극장에서 내리면, DVD 또는 블루레이를 통해 두 번째 막을 올리곤 했다. 최근에는 IPTV의 발전 덕분에 디지털 스트리밍/다운로드 방식으로 두 번째 막을 올린다. 하지만 <옥자>는 넷플릭스와 극장에 영화를 동시에 배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시 말하자면, 극장과 함께 인터넷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보이콧

문제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대형 프랜차이즈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의 반발이었다. 반발의 이유는 인터넷 선개봉으로 인해 극장 수익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소 3주의 홀드백 기간을 두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또한 넷플릭스 선개봉을 철회하고 극장 상영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를 철회하지 않았고, 결국 <옥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옥자>는 대한극장, 서울극장, 씨네큐브, 필름포럼, 아트하우스 모모 등 독립·예술 영화관이나 개인 극장에서만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극장이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은 넷플릭스를 통해 보거나, 먼 거리를 이동하여 영화관을 찾아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다.





넷플릭스의 투자와 시도

관람의 불편함이 생겨버린 <옥자>, 그러나 이것이 봉준호 감독의 고집으로 인해 나온 결과는 결코 아니다. <옥자>의 제작비는 무려 5000만 달러(약 570억)에 달한다. 이러한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시아를 벗어나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당연히 미국뿐이었다. 그런데 미국 할리우드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감독의 권한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감독에게 입김을 불어넣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용납할 수 없던 봉준호 감독은 창작의 제한이 없는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에게 제작비 지원과 창작의 자유를 약속했고, 영화 제작 이후 예정대로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를 선택한 것은 제작비를 지원받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도전이자 시작이 되었다. 디지털 스트리밍은 또 하나의 관람 방식이다. 다만 이전에는 이를 극장 상영보다 나중에 했을 뿐이다. 음원의 디지털 스트리밍 파이가 커진 것처럼, 영화의 디지털 스트리밍 또한 점점 증가할 관람 방식이다. 이러한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영화의 접근성과 관객의 자유도가 점점 높아질 것이다.





화제의 옥자

배급부터 화제거리인 <옥자>, 영화 내용 또한 화제거리이다. 동물 보호와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옥자>는 미자의 모험을 기본 골자로 한다. 그리고 그 모험 곁에서 글로벌 축산기업 '미란도'와 비밀 동물 단체 '동물해방전선(A.L.F.)'의 혈투가 펼쳐진다. 표면적으로는 '미자의 옥자 사랑'이 묘사되지만, 그 속에는 해학과 풍자, 그리고 비판과 경각심이 녹아있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동물 학대에 대한 고발이 주를 이룬다.





기업에 대한 비판

<옥자>에서 미란도 기업은 막대한 자본을 가진 거대 기업으로 그려진다. 26개국에 '슈퍼 돼지'를 보내고, 이를 친환경적으로 식량난을 없앨 혁신으로 마케팅한다. 게다가 친근하고 유쾌한 동물학자를 내세우며 동물 복지가 좋은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조작된 언론 플레이였다. 슈퍼 돼지는 유전자 조작(GMO)으로 탄생한 동물이었다. 그리고 이 동물들은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학대당한 채 고기로 만들어지는 부속품에 불과했다.

<옥자>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에서, 특히 대기업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대중 기만과 거짓 마케팅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축산업에 대한 고발

그리고 '옥자'가 그 많은 동물 중에 돼지로 묘사된 이유는 축산업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많은 동물 단체들이 동물 보호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며 축산업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굉장히 편향적이라고 말한다. 동물보호 단체가 개와 고양이는 '반려동물'이라 보호하려고 애쓰지만, 소와 돼지는 '식용동물'이라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개와 고양이는 키우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마음껏 먹는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이중적인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필요한 학대와 살육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옥자>에서 묘사된 돼지 사육의 모습은 사실 실제보다 축소된 묘사라고 봐야 한다. 돼지는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청결하고 활동적이며 사회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법은 이러한 돼지의 습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는 방식이다. 

실제 어미 돼지들은 스톨(Stall)이라 부르는 매우 작은 철창에서 학대당한다. 이 좁은 공간은 몸을 뒤로 돌릴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어미 돼지는 이 스톨 안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강제로 새끼 돼지를 낳아야 한다. 더군다나 돼지의 지능지수(IQ)는 약 80 정도로 개보다 월등히 높다. 이렇게 높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니, 그 좁은 공간에서 미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EU 등 일부 국가에서는 스톨 사육법을 폐지하였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합법이다. 뿐만 아니라, 전기 충격이나 몽둥이를 이용한 물리적 학대도 숱하게 벌어진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사육장의 실태나 도살 과정을 한번 보라. 본다면 한동안 고기 입맛이 떨어질 것이다. 아마도 개나 고양이가 이렇게 학대 당했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좀 더 인간 친화적이고 귀엽다는 이유로 인간들에게 반려동물로 '선택받은' 개와 고양이들에게는, 돼지의 운명을 피한 게 정말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할듯하다.

이러한 과정을 말하는 이유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피력하기 위함이 아니다. 동물도 동물을 잡아먹는다. 이는 하나의 생태계이고 생존 수단이다. 그러나 포식하는 동물들이 인간처럼 잔인하고 불필요하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우리 인간들도 이러한 잔인한 학대를 멈추자는 것이 바로 동물 단체들의 주장이다. 또한 영화 <옥자>가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동물 학대

사육되는 동물은 위에서 말한 돼지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육되는 동물은 대부분 생명체라기 보다 먹거리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라,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다. 소의 사육도 돼지만큼이나 건강하지 못하다. 흔히 말하는 소고기의 마블링은 사실 운동 부족과 강제적 급식으로 인한 비만의 결과물이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며 억지로 먹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향고양이를 통한 강제적인 루왁 커피 생산, 양계장의 숨 막히는 케이지, 살아있는 곰을 통한 웅담 채취,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때려죽이는 개, 인간 미용을 위한 동물 실험, 병에 걸린 동물의 생매장 살처분 등 잔인한 동물 학대는 지금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학대를 멈추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곁에 지내는 개와 고양이에게 주는 관심 정도만 줘도 충분하다.





미자의 기상천외한 모험

영화는 위에서 말한 동물 학대를 상세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미자의 모험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미자는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산골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뉴욕까지 간다. 이러한 과정이 미자의 무모함 덕분에 엉뚱하고 귀엽게 그려진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말이 안 된다 싶을 정도로 황당하긴 하다. 미자를 저지하려는 방해물들이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구성을 좀 더 짜임새 있게 연출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보다는 미자의 관점과 옥자의 시선을 더 중점적으로 다뤘다. 





동물 단체의 한계

영화 <옥자>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도 다뤘다. 미란다의 표리부동적인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사악하며 이중적이다. 하지만 <옥자>는 이들과 대립하는 동물 보호 단체 ALF에서도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케이는 ALF의 신념을 저버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 미자와 ALF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제이는 케이의 행동을 비난하며 케이를 ALF에서 내쫓지만, 정작 자신은 케이에게 폭력을 가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묘사를 통해 동물 단체의 한계를 꼬집었다. 이들의 실수는 스스로 '대를 위한 희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타인에게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결국 이런 모습은 이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인식 변화를 이끄는 것이 이들의 주된 목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때문에 동물단체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많은 사람들이 동물 보호에 함께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러한 모습이 영화 결말과 쿠키 영상에서 나타난다. 제이와 케이는 화해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ALF는 버스에서 검은 두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며 함께하자고 권한다.





대중에 대한 비판

요새 "대중은 개돼지" 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옥자>에서도 이러한 우매한 대중에 대해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을 위해 꺼낸 캐릭터가 바로 루시 미란다의 언니 '낸시 미란다'이다. 낸시는 루시보다 냉철하고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인물이다. 루시는 거짓 마케팅을 통해 대중 기만을 했지만, 낸시는 그냥 대중을 무시하고 자본으로 환심을 사는 인물이다. 루시의 거짓 마케팅이 ALF에 의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이로 인해 루시는 좌절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낸시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냥 싸게 팔면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미란다의 제품을 사는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샀을 것이다. 실제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부를 창출한 기업이 꽤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나가는 기업들이 많다. 기업이 자본주의 시대에 최적화됐듯이, 사람들도 그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한계

영화 결말에 미자는 결국 옥자와 재회한다. 그러나 옥자를 구출하려는 도중 낸시 미란다와 만나게 된다. 미자는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결국 자본주의에 무릎을 꿇는다. 옥자를 순금 돼지로 '구매'한 것이다. 즉, 옥자를 '가족'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물건'으로 데려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생산 공장에서 도살되는 수많은 돼지들 중에 옥자만 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체험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역설한 것이다. 지금도 많은 학대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학대를 멈추기 위해서는 개인이 혼자 할 수 없다. <옥자>의 흥행과 함께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도 흥행하기를 기원한다.




  1. 넷플릭스 [Netflix] : 세계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월 구독 방식의 유료 서비스이며, 화질의 정도, 동시 접속의 정도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현재 가입 후 첫 달은 무료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비슷한 서비스로, '왓챠 플레이'가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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