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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Seven Years of Night) 후기
어둡고 답답한 밤
추창민 감독이 영화 <7년의 밤>으로 돌아왔다. 이전 작품이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였으니, 무려 6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이 영화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스릴러 장르이며, 마을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어둡게 담아낸 영화다. 배우로 류승룡 (최현수 역), 장동건 (오영제 역), 송새벽 (안승환 역), 고경표 (최서원 역), 이레 (오세령 역), 문정희 (강은주 역) 등이 캐스팅되었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소설, 영화 스포일러 모두 포함)
영화의 큰 흐름은 소설과 비슷하다. 음주운전으로 세령을 죽인 최현수, 세령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려는 오영제, 현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연좌제를 당하는 최서원, 그런 최서원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안승환, 이 네 명의 남자가 이야기를 이끄는 구조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담백하게 묘사하는 느낌은 소설과 닮았다.
하지만 세부적인 묘사는 영화와 소설이 사뭇 다르다. 특히 인물 묘사를 대부분 과거에 집중했다. 사실 집중보다는 집착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최현수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 우물에 대한 전설, 아버지의 신발 등 최현수의 과거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세령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과거와 결부 지어 묘사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러기엔 연출이 다소 지루했다.
최현수의 아들인 최서원은 소설과 제일 비슷하게 그려진다. 어느 학교를 전학 가든 어디를 가든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다. 모두 오영제의 서슬 퍼런 계획 때문이었다. 가족과 자신의 삶을 잃은 그를 보살펴주는 사람은 안승환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안승환은 멘토이자 정신적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진짜 아버지인 최현수만큼은 용서하기 힘들었다. 모든 게 아버지 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아버지의 사형 선고를 들으며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결국 아버지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본래 안승환은 소설에서 꽤 비중 있는 인물이나, 영화에서는 비중이 낮게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안승환이 몰래 야간 잠수하던 중에 세령의 시신을 보게 된다. 안승환은 자신에게 누명이 씌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세령을 목격한 사실을 함구한다.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안승환-최현수-오영제 간에 첨예한 구도 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설정이 빠지면서 스릴감을 낮춰버렸다.
오영제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소시오패스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상습적으로 아내와 딸을 폭행하고, 세령 마을에서 왕으로 군림해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 죽으면서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다. 항상 자신의 뜻대로만 이루어졌던 삶에 최현수가 난입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죽인 최현수에 대한 복수, 그에 이어 아들 최서원에 대한 복수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여기까지는 소설과 대체로 비슷한데, 결말이 완전히 바뀌면서 캐릭터에 대한 느낌도 완전히 바뀌게 됐다. 소설에서 오영제는 더 악랄한 악당으로 그려진다. 마지막까지 서원을 괴롭히고 죽이려 하나, 승환과 서원의 계획에 의해 저지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자살하며 생을 마감한다. 이 때문에 오영제가 소설에 비해 미화됐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남의 딸은 죽여도 되고, 자신의 아들만 챙기는 최현수가 오영제보다 더 나쁜 놈이 됐다.
그리고 또 소설에서는 오영제의 탁월한 추리 능력이 돋보인다. 그 덕에 오영제가 최현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추리하는 과정이 꽤나 스릴 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세령을 추적하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전부다. 그래서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별로 없다 보니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가 되었다.
소설이 영화화되면, 그 소설과 영화는 항상 비교 대상이 되어왔다. 사실 소설과 영화는 분명 다른 영역이며, 다르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긴 장편 소설을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으로 줄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와 비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원작 소설이 더 낫네" 라고 말한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7년의 밤>도 그러했다. 원작 소설이 훨씬 더 나은 영화였다.
처음에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원작 소설을 재밌게 봤던 모든 이가 정말 기뻐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었다. 하지만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대부분의 캐스팅이 원작 소설의 인물과 느낌이 다르달까. 그렇지만 막상 영화에서는 그들이 무리 없는 연기를 보여주긴 했다. 다만 내용이 문제였다. 스릴러보단 어두운 드라마에 가까웠고, 결말의 변화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영화 속 인물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고, 드라마적 내용은 너무 과잉 표현되어 답답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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